동행칼럼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 설립자)

제목 :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 설립자)
등록일시 :
2021-07-1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81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솔선수범한 위대한 선구자

우리나라 최초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사업가

 

“국권수호를 위한 유학의 길”

1905년 나라를 둘러싸고 벌이던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전 투구와 러일전쟁을 목격하면서 국망의 위기에서 국권을 수호하고 자주독립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실 력 양성과 경제적 자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던 유일한 박사의 부친은 11살의 아들을 독립 운동가 박용만과 함께 미국으로 보낸다. 을사조약과 정미 7조약으로 국권을 잃게 되자 미주지역 최초의 한인 군사학교에 입학하여 학비를 벌며 오후에는 학과 공부와 군사훈련에 임하였다. 조국 독립에 헌신하 려고 하는 독립투사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길러진 민족의 식과 자주독립 사상은 그의 독립운동의 원천이었고, 기업 경영의 지표로 작용하였다.

 

“조국독립에 헌신”

선생의 조국 광복에 대한 투철한 의지는 1941년 미군 전 략정보처 (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비밀침투작전에도 활약하였으며, 한인 국방 경위대로서 창설된 맹호군 (猛虎 軍) 편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 하고, 1945년 미군 전략정 보처(OSS)에 의해 수립된 냅코작전계획 (Napko Project) 에서 반일 민족의식이 투철한 재미한인을 선발 하여 특수 공작 훈련을 시킨 다음, 한국과 일본에 침투시켜 적 후방 을 교란하는 작전에 핵심요원으로 선발되어 혹독한 훈련을 받고, 제1조 조장으로 활동하였다. 50대의 나이에도 고된 훈련까지 직접 수행할 정도로 조국 독립에 헌신적이었다.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

미국에서 민족정신을 새기며 조국의 부흥을 열망하는 청년으로 미시간 대학교 경영학 학사,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 스탠포드 대학교 로스쿨 법학박사, 미시간 중앙 철도회사와 세계적인 전기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사(General Electric) 등에서 근무하며, 사업체 도 운영하여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하던 때, 일제의 탄압 이 절정에 이르고, 가난과 굶주림,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돌던 그때 참담한 조국의 현실 앞에 개탄하면서“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라는 그의 신념에 따라 미 ” 국의 사업체와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귀국하여 1926년 12 월 유한양행(柳韓洋行)을 설립하였다. 또한 사업을 다각화하여 의약품 생산과 함께 위생용품, 농기구, 염료 등을 수입하여 국민의 건강과 생활 향상에 진력하고, 우리나라의 특산품인 화문석, 도자기, 죽제품 등을 미국에 수출하여 '민족자본 형성과 독립운동자금'에 기여하였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

기업은“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국민에 봉사 하고, 정직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배출하며, 기업 이 익은 첫째,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 정직하게 납세 하며, 셋째, 남는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라는 기업이념을 바탕으로 유한양행을 창립하였으며, 또 한 한국 최초로 사원 지주제를 도입하여 기업의 민주화를 위한 초석을 세웠다.

 

‘버드나무 문양이 상징인 기업’,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싱싱하고 푸르게 성장하여 국민보건 향상에 앞장서온 모범기업’, ‘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 이러한 평가를 받는 기업이 있다. 바로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양행이다.

 

“인재양성이 최대의 자본”

'숙련된 기술자와 훈련된 사원은 기업의 최대 자본이다.' 라고 하며 유능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데 힘썼다. 또한 '기업의 기능에 는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라는 신념으로 고려공과 기술학원(유한공업고등학교), 유한 중학교를 세 우고 전액 장학제도를 채택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청지기 사상”

기업가는 기업을 통해 개인의 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 회를 이롭게 한다는 공익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 선생은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 원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강조해왔다. 당시 한국에서는 기업 소유권을 후손에게 상속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었 으나 유일한은 그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서 그 가 강조하던 청지기 사상을 몸소 보여주었으며, 그의 딸 유 재라 역시 죽으면서 나머지 재산을 사회에 기증함으로써 2 대에 걸쳐 청지기 사상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신뢰는 기업의 핵심역량”

유한양행의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경영자임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산 사람이었다. 또한 합리적이고 부패 없는 투명한 경영을 한 존경받는 경영자 였다. 특히 그의 유언장은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 면서 끝까지 그의 신념을 지킨 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기업가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한 인간으로서 끝까 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유일한 박사는 현대 사회에서 오로 지 이윤만을 추구하며 갖은 방법을 통해 세금을 회피해 자손에게 재산을 넘기려 하는 기업가들에게 모범이 될 것 이다.

또한 한국의 기업문화가 더욱 성숙해지고 한국이 더 발전 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박사의 이념과 행동을 배워 나가야 할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국민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영을 하게 되면, 국민들은 신뢰라는 형태로 기 업에게 있어서 가장 큰 핵심역량을 가져다 줄 것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라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사 업가, 애국애민을 중심에 두고 실천한 독립운동가이자 민 족자본가, 우리는 유일한 박사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온몸으로 실천하며 솔선수범한 위대한 선구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글_아름다운동행 대표 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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