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칼럼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 간송 전형필

제목 :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 간송 전형필
등록일시 :
2021-07-22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9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합병된 역사는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백범 김구 선생 '나의 소원'

 

 

한국의 미를 지켜낸 당대 최고의 부자

 

당대 최고의 부자 가문의 막대한 재력을 물려받은 전형필 선생은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말살되어 가는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고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 민족 문화의 결정체인 문화재와 미술품이 인멸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민족 문화재 수집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간송은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는 문화적 애국운동을 했다. 24살의 어린 나이에 논 800만 평 현재 가치로 6천억의 재산을 상속받은 선생은 그의 엄청난 재산으로 일제에 의해 수발되는 우리 문화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6천억의 재산으로 지켜낸 문화재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던 시절 5000(현재 15)으로 그림 한 장을 사고, 2만 원(60)으로 도자기 하나를 사던 '이상한 남자 바보 부자'로 불린 조선인 청년 전형필이다. 1936, 골동품 경매장에서 아름다운 백자를 손에 넣으려 일본 부자들이 너도나도 손을 든다. 하지만 최초 가격 500(15)이었던 이 백자를 15,000(45)을 주고 산 사람은 조선인 전형필이었다.

 

천 마리의 학이 구름 사이를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 청초한 옥색에 아름답게 균형 잡힌 고려청자를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2만 원(60)에 사들인다. 이 청자가 바로 국보 제68<천자 상감 운학문 매병>으로 소중한 우리 민족 문화의 자부심이다. 특히, 당시 일본에 사는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는 고려자기에 빠져 어마어마한 양의 고려자기를 수집했다. 일제가 수탈한 국보급 자기들을 그가 수집했던 것이다.

 

간송은 일본으로 넘어가 그에게서 문화재 20점을 기와집 400(1,200)의 거액을 지불하였고, 그렇게 되찾아온 문화재 중에는 '청자 기린형 향로', '천자압형연적' 등 다수 국보급 물품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오사카에 신윤복의 화첩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인 상인에게 당시 25000(75억 원)을 주고 단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구입한다. 그의 열정 덕분에 우리는 '단오풍정', '월하정인'등 많은 작품들을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 간송의 수집품 중 가장 으뜸이라 할 만한 보물이 바로 국보 70호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당시 아무리 귀한 서책도 일백 원(3천만)을 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간송은 해례본의 가치를 알아봤고 일만 원(30)에 값을 치르고 해례본을 입수한 뒤, 6.25 전쟁 당시에도 목숨처럼 보호하며 품속에 간직한 채 피난을 다니며 지켜내었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그가 이렇게 낡은 문화재를 전 재산을 털어 사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합병된 역사는 없다" 라는 명확한 신념과 책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확고한 결단력으로 조선의 독립을 굳건히 믿으며 일제의 수탈로부터 민족의 얼과 혼을 지키기 위한 일에 혼신을 다 바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문화재 시키기에 평생을 바쳤다.

 

부자로서 막대한 부를 누리며 평생을 편하게 쉴 수도 있었지만 문화적 민족 운동에 기꺼이 전 재산을 바쳐서 일제에 넘어갈 뻔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을 지켜낸 간송 선생을 통하여 내 것을 먼저 버려 민족의 자존감과 문화적 자긍심을 지켜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며 삶의 거울 앞에 선다.

 

(아름다운 동행 대표 – 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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