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칼럼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 거상 김만덕

제목 :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 거상 김만덕
등록일시 :
2022-07-04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712

 

<부자의 품격> 노블레스 오블리주 거상 김만덕

조선의 여성 CEO 김만덕, 굶주린 백성에 재산 풀어 구제

무역과 객주업으로 이룬 거상, 조선의 기부 문화를 실천하다

 

제주도 최고의 여성 갑부 김만덕, 천금으로 쌀을 사들여 백성을 구제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혼자 힘으로 사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부자가 되었다는 입지전적인 인물인 동시에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구제를 실천한 업적까지 전근대 시대의 한계를 극복한 자수성가한 여성의 표상이 되어 조선시대에 기부 문화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 김만덕이다.

 

1795년 심한 태풍이 제주도를 덮치면서 지리적 환경적 요인으로 가뜩이나 식량 생산에 어려움이 많았던 농사에 큰 타격을 주어 수많은 백성이 굶주리며 고통을 당하고 신음하고 있었다. 이에 본토에서는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식량 20,000섬을 보내지만, 제주도로 가던 중 이 배마저도 침몰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굶주림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가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본토에서 쌀 500섬을 사비로 사들여 아사해가는 백성의 구호에 적극 나서는 등 백성과 빈민을 위한 구제에 적극 나섰다.

 

훗날 갑부로서 세상을 떠날 때도 유언으로 양아들의 기본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제주도의 빈민들에게 기부함으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부자의 모습을 보였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으킨 사업의 성공

조선 후기는 여성의 능력을 쉽게 발휘할 수 없었던 사회로 김만덕과 같은 여성의 성공 신화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조선 후기 영조, 정조시대는 조선시대 전체로 보더라도 대표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전통적인 산업인 농업 이외에도 수공업이나 상업, 유통 경제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시기였다. 조선 후기 어업과 해상 무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제주도가 떠오르고 있었다. 상업과 유통 경제의 발달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 포구 무역과 객주업이었다. 만덕은 그곳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직접 상업에 뛰어들어 포구 무역과 객주업으로 큰돈을 벌어 거상이 되었다.

 

김만덕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양인(良人)인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12살에 풍랑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에 제주도를 덮친 전염병의 여파로 어머니마저 잃었다.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된 만덕은 바로 퇴기(退妓)의 수양딸이 되었다. 대개 기녀는 자신의 딸에게도 기예를 가르쳤고, 만덕도 15세 무렵부터는 관기(官妓) 생활을 하게 되어 만덕이 기생으로 알려진 것은 이러한 삶의 배경과 관련이 깊었다. 그러나 만덕은 양갓집 딸이라는 자존심이 컸기 때문에 스스로는 기녀로 자처하지 않았다고 채제공이 쓴 만덕전에는 전하고 있다.

 

만덕은 관기에서 다시 양인 신분으로 돌아온 뒤 건입 포구에 객주를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제주 관아에 인접한 이곳 포구에는 장삿배에서 관선에 이르기까지 많은 배가 드나들었다. 객주는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일종의 중개 상인이었다. 현대적 형태로는 호텔업과 판매업이라 할 수 있다. 본토와 제주도 사이의 물자 유통에 그녀 특유의 장사 수완을 발휘했다. 제주는 쌀 등의 곡물이 부족한 곳이었다. 만덕은 외부에서 반입되는 쌀이나 제주에서 생산되지 않는 소금을 확보하여 이를 미역, 전복 등 제주의 해산물과 교환하는 사업수완을 발휘해 성공한 큰 부자가 되었으며, 결국 제주도 최고의 여성 갑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다른 객주들의 시기심 때문에 부정축재로 허위 신고를 당해 투옥되었다가 지역 주민의 상소로 풀려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소박한 꿈, 역사가 되다

제주의 기생 만덕(萬德:17391812)이 재물을 풀어서 굶주리는 백성의 목숨을 구하였다고 목사가 보고하였다. 상을 주려고 하자, 만덕은 사양하면서 바다를 건너 상경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기를 원하였다. 허락해 주고 나서 연로의 고을들로 하여금 양식을 지급하게 하였다.”(정조실록, 정조 20125)

 

당시의 관점에서 보아 최변방 제주에서, 신분과 성차별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이루어낸 재물을 아낌없이 베풀어 백성을 구제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으며, 국가의 공식 기록인 실록에 기록하였다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김만덕의 행적은 승정원일기’, ‘일성록등과 박제가의 초정전서’,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조수삼의 추재기이등 조선 후기의 많은 저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는 만덕의 행적이 당시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살아있는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천사

제주도에서는 1976년 제주시 건입동의 모충사 경내에 김만덕 기념관을 만들고, 2004년에는 김만덕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국내외 소외 계층들에 대한 지원과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만덕상을 제정하여, 또 다른 만덕을 현재에도 계속 배출해가고 있다. 제주 기녀 출신에서, 성공한 여성 CEO로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기부 천사 만덕. 그녀로 인하여 지금도 살아있는 조선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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